혁명당을 위한 국제사무국의 강령

Translation made by http://sotong.or.kr

서론

<현 시기>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의 종말을 초래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착취를 끝내지도 제국주의와 세계전쟁의 위협을 끝내지도 못했다.

그와 반대로 소련의 사망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가동의 근본적인 요인들 때문이었다.

첫째는 세계경제의 지구적 위기였다. 1970년대 초 이래 모든 자본주의는 국가경제이건 혼합경제이건 간에 점점 침체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자본주의가 축적의 또 다른 순환을 통하여 하강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둘째는 소련경제의 침체였다. 소련은 그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실제로 현존한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가 고전적 부르주아의 역할을 담당하는 자본주의의 특수한 형태였다. 국가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한 소련공산당은 새로운 지배계급의 특권을 다른세대로 넘기는 특권이 되었다. 나아가 미국과 서구에 비해 뒤떨어진 기술수준과 결부된 경제침체 때문에 군사주의를 지탱하는 경제적 기반이 점점 약해졌고, 1970,80년대의 무기경쟁속에서 소련경제는 미국의 군사비 지출을 따라갈 수 없었다. 무기경쟁을 끝내고 경제를 재구축하려는 고르바초프의 시도는 지배계급 내부로부터 방해에 직면했고, 그 경제위기로 인해 무언가를 시도할 기회가 제한되었다. 이모든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1991년 소련은 최종적으로 몰락햇다.

따라서, 현시기의 역사는 두가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1. 경제에 대한 완전한 국가통제(이른바 명령경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진정한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생산자 자신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무엇을 생산할지 집단적으로 결정한다.
  2. 자본주의가 자유롭게 표현(이른바 시장의 법칙)하도록 한다는 이룰 수 없는 환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에 고유한 가치법칙을 억압하거나 규제하려는 자본주의 국가의 어떤 시도도 자본주의 경제의 세계위기를 없앨 수 없었다.

<일반적 상황과 노동계급의 전망>

오늘날의 계급관계는 한편으로 심각한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위기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낮은 수준의 반응이 있다. 이 둘사이에는 엄청난 불균형이 존재한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점점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가 되고 있으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민당과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계급에게 깊숙이 스며들었다. 노동조합과 자본주의 좌파당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것은 맑스가 “사회관계의 물상화”라고 한 것의 구체적 표현이다. 역사적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오늘날 그들은 자본의 전체주의의 물질적 도구이다. 그들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부딪쳐야 한다.

계급투쟁을 억누르는데서 자본주의가 성공하긴 했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은 지속되고 있으며, 맑스주의자로서 우리는 그 모순을 영원히 억누를 수 없다는것도 알고 있다.

노동계급이 다시 주도권을 잡고 자본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혁명적 정치조직은 좌파 부르주아 세력에 대항하여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조직적 전투를 이끌 위치에 있어야 한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은 1917년으로 이끈 혁명적 강령이 초기의 전투로부터 강화되어 나타났다는 의미에서 1917년을 위한 준비였다. 노동계급에게 자신의 역사적 경험이 갖는 교훈을 되돌려 주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의 과업이다. 따라서 그들은 계급해방에서 필수적인 힘이다.

<혁명당을 위한 국제사무국>

국제사무국은 이탈리아의 <국제주의 공산주의자당, PCInt>과 영국의 <공산주의 노동자조직, CWO>이 공동으로 주도한 결과 1983년에 결성되었다. 이러한 주도적 역할에는 두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진영 내에 이미 존재하는 경향에 조직형식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197781년 사이의 국제공산주의대회에서 나타났으며 마지막 대회에 CWO와 PCint가 고수한 일곱가지 요점이었는데 다음과 같다.

  •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서 10월 혁명의 승인
  • 코민테른 1,2차 대회에서 수행한 사민주의와의 단절에 대한 인정
  • 국가자본주의와 자율경영에 대한 조건 없는 거부
  • 부르주아당으로서의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한 거부
  •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에 종속시키는 모든 정책에 대한 거부
  • 맑스주의 원리와 방법론을 프롤레타리아 과학으로 인식하는 혁명조직에로의 자향
  • 혁명적 계급운동과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정치지도를 위한 필연적인 정치기관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국제당>으로 이끄는 과정에 공헌할 목적으로, 투쟁하는 계급을 향한 능동적 정치개입의 조정을 위한 혁명집단 사이의 논쟁의 부분으르서 국제회합에 대한 인식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심화하는 위기가 정치적 반응을 촉발시킴에 따라 국제무대에 새로 등장하게 된 조직과 개인을 위한 초점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무국이 전체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에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왔다. 전체 프롤레타리아 진영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계급을 대표하고, 어떤 형식으로든 민족주의와 거래하지 않으며, 1917년 10월 혁명이 더 넓은 세계혁명이 될 수 있는 시발점이었다고 인식하면서 동시에 스탈린주의와 이전의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인식하는 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IBRP의 틀은 다음과 같다.

  1.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국제적이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국제혁명은 국제당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 당은 노동계급 사이에서 혁명강령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내려고 서로를 조직한 가장 계급의식적인 노동자의 구체적인 정치표현이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너무 미약하고 너무 늦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었다.
  2. 따라서 IBRP는 세계 공산주의당을 그 정치 강령과 국제세력이 존재하게 되자마자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사무국은 당을 위한 것이지 유일하게 이미 존재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미래의 당은 단일 조직의 단순한 확장은 아닐 것이다.
  3. 세계 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혁명 강령의 명확한 세부 내용이 잠재적인 구성부분 사이의 토론과 논쟁을 통해 관련된 모든 면에서 명료화되어야 한다.
  4. 세계 당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조직은 이미 그들이 나오는 지역에서 노동계급 내에 의미있는 존재여야 한다. 선전집단에 지나지 않은 기반 위에서 국제 당(또는 초기의 핵심)을 선언하는 것은 혁명운동의 진전을 가져올수 없다.
  5. 혁명조직은 선전망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제한된 기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노동계급 속에서 혁명세력으로 확립하는 작업은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임무이다.
  6. 지난 혁명적 물결의 교훈은 노동계급이 조직화된 지도력 없이 무언가를 할 수있다거나 당이 곧 계급(후기 보르디가주의자들의 형이상학적 추상)이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도력과 그 조직적 형태(당)야말로 혁명적 노동계급이 가진 가장 중요한 무기라는 것이다. 그 임무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대중기관(소비에트)속에서 공산주의 전망을 향해 투쟁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은 노동계급의 소수로 남을 것이며 일반적으로 계급의 대체물이 아니다.사회주의를 확립하는 임무는 전체 노동계급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의식적인 계급의 전위일지라도 위임될 수 없는 임무이다.

혁명당을 위한 국제사무국의 강령

<자본주의>

모든 계급사회에서와 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 때문에 고통 받는다. 부르주아(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와 프롤레타리아(생산수단에 노동력을 지불하는)사이의 모순이다.

노동은 모든가치의 원천이다. 모든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있다. 자본주의 이윤의 원천인 노동자의 노동력이 생산하는 잉여가치는 자본화된 교환가치이다. 노동자로부터 더욱 많은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 그리고 자본주의와 노동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을 위한 기반이다.

<자본의 형식>

한편으로 생산수단의 부르주아 소유라는 구체적인 법적 형식과 다른 한편으로 임노동의 사회적 성격이라는 변화하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사회적 성격과 재산의 제한된 소유사이의 기본적 적대는 남아있다.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을 국가소유로 한다고 해서 금융자본의 재산이라는 생산수단의 자본주의적 성격이 바뀌지 않았다. 금융자본은 제국주의 시대 자본의 실질적인 형태이다.

얼마 전 우리가 사회주의라고 한 국가는 사실 국가자본주의의 특수한 형식이었다. 그곳에서 국가는 생산의 물질적 수단을 직접 통제하고 시장에 대한 독점을 장악했다. 국가소유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한 비극은 이제 이른바 소비에트 사회가 고전적(곧 서구)자본주의의 조직적이고 법적인 구성으로(돌아왔다는) 종말에 부딪쳤다.

<제국주의>

예전의 소련과 그 동맹국은 하나의 제국주의 블록을 구성했다. 그 블록의 몰락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약한 자본주의 국가을 상대로 한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중심의 금융과 산업의 촉수가 주변부 지역으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불가피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어떤 국경도 인정하지 않으며, 주변부 지역의 토착 부르주아에게 어떠한 민족적 충성심도 명령하지 않는다.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강화되는 동안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또는 절대왕정에 저항하는 운동은 유럽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결집하는 틀을 제공했으며, 이는 나중에 거대한 노동조합과 당 조직의 형성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기관 속에서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계급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었고, 동시에 맑스와 엥겔스의 혁명이론은 인정을 받고 프롤레타리아 정치 생활의 확립된 부분이 되었다.

1914년 사민주의가 제국주의와 하나 되면서 노동계급 운동은 결정적 전환점에 도달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을 제2 인터내셔널(18991914) 동안 대중운동을 지배했던 사이비 개량주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코민테른의 창설은 맑스주의 원리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혁명과 반혁명>

유럽혁명운동의 패배와 러시아에서의 반혁명의 본질은 2차 세계대전까지 전체 경험의 교훈을 이해하려 할 때 혁명적 맑스주의자에게 문제가 되었다. 반혁명 과정은 코민테른을 구성하는 당들에게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과하고 동시에 그 당들이 사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도록 하면서 코민테른에 반영되었다.

이러한 퇴행의 과정을 트로츠키와 그 추종자들이 뒤따랐다. 트로츠키는 1930년대에 사회민주당과 노동당에 입당하는 정책(이른바 “프랑스전환”)을 추구했다. 트로츠키주의는 자신들을 잠재적인 혁명적 경향이라고 여겨 일소해 버린 소련의 제국주의 야망을 지지했다.

반혁명의 경험은 또한 혁명가들이 국가.당.계급 사이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도록 요구한다. 계급당은 계급의식의 정치적 표현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의 혁명투쟁에 필수불가결하다. 계급당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이라는 강령을 방어하면서 조직된, 노동계급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앞선 부분을 포함한다. 그말뜻에서 혁명당은 늘 프롤레타리아의 소수일 것이지만, 혁명당이 방어하는 공산주의 강령은 전체 노동계급에 의해서만 이행될 수 있다.

당 없는 혁명의식을 생각할 수 없듯이, 러시아의 경험은 가장 계급의식적인 당일지라도 소비에트(또는 비슷한 노동계급 대중기관)에서 분리된 채 혁명을 유지할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소비에트는 노동계급 정치권력(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표현이며, 러시아에서 정치적 삶으로부터 그것이 퇴조하고 주변화한 것은 어린 소비에트 국가가 자본주의 반혁명에 의해 목 졸렸음을 상징한다.

미래의 세계혁명에서 국제당은 오로지 대중의 계급기관을 통해 계급운동을 이끌려고 목표해야 하며, 그 출현을 고무해야 한다.

당도 소비에트도 그 자체로는 반혁명에 맞서는 보증이 아니다. 승리의 유일한 보증은 노동자 대중 자신의 계급의식이다.

<혁명당>

계급당은 (또는 이전에 당에 선행하는 정치조직은) 전체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강령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가운데 가장 의식적인 부분으로 이루어 진다. 미래의 세계당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분열적이고 반혁명적인 민족주의저긴 경향의 반동적 영향력으로부터 대중을 비틀어 빼내는 임무를 가질 것이다.

부르주아의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장악을 단절로 이끌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위기의 시기이다. 그때까지 혁명강령과 그것으로 대표되는 정치조직은 계급과 강제적으로 분리된 조건 아래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의지력이나 단순한 조직적 수단에 의해 극복될 수 없는 분리이다.

그럼에도 2차대전 이후에 시작된 축적 사이클은 종말에 가까이 왔다. 전후 경기부흥은 오래 끌었지만 지구적인 경제위기에 길을 내주었다. 전쟁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불가항력적인 추동은 오늘날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조건과 삶의 조건에 대한 일반적 공격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착취자에 대항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질적 조건은 존재한다. 공산주의 혁명의 필요성과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부족한 것은 이러한 투쟁을 준비할 혁명적인 정당이다.

<조직의 지도원리>

  1. 민족해방이 자본주의 세계를 위해 진보적이었던 역사의 시기는 1914년 1차 제국주의 전쟁과 함께 끝났다. 제국주의 시대 자본주의의 지구적 성격은 세계적인 사회구성의 외관상 다양함이 서로 다른 생산양식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느 지구상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서로 다른 혁명행동 전략을 채택할 필요가 없다.
    민족문제가 아직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느 열려 있으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가 민족 부르주아와 (또는 더 나쁘게 제국주의 전선의 하나와) 동맹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혁명 전략과 전술을 이면으로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오직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계급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단결할 때만 모든 민족적 억압의 기반은 무너질 것 이다. 혁명조직은 인종적 또는 문화적 분리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계급연대를 방해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2. 자본주의 지배의 보편적 성격은 보편적이 혁명전략을 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은 모든 나라 공산주의당의 기본원리이다.
    어떤 초보적 자유를 위한 요구가 혁명선동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공산주의당 전술은 국가의 전복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 자유가 의회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는다.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밖에 국가관료, 그 보안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혁명가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계급, 영역에서 싸우라고 요구하면서 의회선거에 반대한다.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관의 파괴를 통해서만 노동계급이 표현과 조직의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혁명가당에 달려있다.
  3.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노동력 판매조건에 대한 협상자로 나타났다. 노동조합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중재기관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복을 위해 쓸모 있는 도구가 결코 아니며, 결코 그런적이 없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조합은 그 사회적 구성에 상관 없이, 특히 자본주의가 위협받는 위기의 순간에도 자본주의를 보존하기 위해 일하는 조직이다. 이로부터 혁명가가 노조를 장악하거나 혁명기관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곳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반혁명의 보루가 될 노동조합과 싸워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이 투쟁기관이자 권력기관이라고 전통적으로 이해한 그러한 대중기관은 계급투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꼬뮨이나 소비에트(평의회) 형식으로 나타났다.
    공산주의자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그리고 그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정치적 지도력의 지위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노동계급이 만들고 공산주의 지도력을 가능하게 하는 대중기관은 첨예한 투쟁의 시기에만 태어난다. 이러한 상황의 바깥에서 당은 계급의 선진대오로서 정치 지도력을 발전시키는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하여 노동자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공산주의자의 영원한 임무다.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과 광범한 노동계급 대중사이의 직접적 연결고리로서, 작업장에서 가장 의식적인 노동자를 조직하는 수단을 찾는 것은 공산주의 조직의 임무이다.
  4. 러시아에서 10월승리로 시작한 혁명 과정은 러시아 국가가 자본주의적 경제 기초를 방어하면서 스스로 전환될 때 끝났다. 이는 소비에트 러시아가 고립되고 주요 유럽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물결이 패배한 결과였다. 이러한 경험은 일국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맑스주의자에게 단호하게 보여주었다. 어떠한 사회주의 또는 혁명국가도 진정한 국제혁명 과정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봉기가 특정국가에서 성공했을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표현할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곳에서 혁명운동이 성공해서 새로운 사회관계의 건설을 시작할 구체적인 가능성을 열지 않는 한, 갓 태어난 권력이 지탱할 가능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5.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코민테른은 이제 러시아 당이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고, 더 이상 국제노동계급의 전략.전술적 요구를 추구하는 집중화된 수단이 아니었다. 유럽혁명과 중국혁명의 남은 잠재력은 이제 소련공산당 국가의 자기보존 필요에 의해 종속된 코민테른 정책에 의해 침해 되었다.
    소련에서 혁명과정의 단절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기초한 스탈린치하 반 노동계급 독재의 강화로 귀결되었다. 소련처럼 큰 국가에서의 이와같은 체제발전은 제국주의 권력으로서의 재등장을 의미했다. 2차세계대전이후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주의가 넘겨받아 스탈린주의적인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채택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실패와 이 블록의 몰락은 “노동자국가”가 마침내 그 퇴행을 완성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강대국”에서 자본주의 위기의 정도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6. 중국에서는 다른 과정이 같은 결과, 즉 오늘날까지도 제국주의 국제동맹 체제 내에서 “진정한”역할을 찾고 있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낳았다. 중국역사에서 본질적 차이는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과 비교할 만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한적이 없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체체의 역사는 1927년 광동과 상해에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비극적으로 패배한것과 함께 시작한다. 이후 농민을 돌격대로 한 계급블럭이 수행한 민족 전쟁이 뒤따랐다. 그 전쟁은 스탈린주의 보호아래 그리고 고도로 집중화된 똑같은 국가자본주의 관계에 기초한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끝났다. 이 체제는 1960년대에 신-스탈린주의 기치 아래 러시아 영향권으로부터 떨어져나가 1970년대에 미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처럼 분명히 모순되는 움직임은 경제통제를 유지하고 자본축적을 고무하려는 시도로부터 나왔다.
    중국은 한번도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가진적이 없으며, 마오주의 이데올로기는 민족자본의 이득을 위해 대중의 이해를 희생시키면서 대중을 박해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7. 위의 요점을 살펴보면 지금이 국제 혁명당, 프롤레타리아 국제당 건설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할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반동세력과 전쟁에 프롤레타리아를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에 맞서 투쟁하는 임무는 혁명가들의 허약한 세력이 허용하는 만큼 효과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이는 국제적인 규모에서 혁명가들의 조직과 집중을 요구한다. 오늘날 지구 곳곳에 흩어진 혁명세력의 파편화된 투쟁으로부터 미래 국제혁명당의 정치.군사적 투쟁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정치적 동질화와 새로운 간부조직을 확보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당 결성은 함께 일해왔고 혁명강력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는 여러 “국가”조직의 해소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당의 국제사무국은 이러한 조직의 조정과 통일을 위한 초점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규약은 마침내 개별 가맹단위가 해소되고 진정한 국제구조로 집중되는 조직적 동질화를 위한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무국은 스스로 정한 과업을 완수할 것이다.
혁명당을 위한 국제사무국 , 1997